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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노래 19로 바둑소설
지방바둑문화 활성화를 위해 발로 뛰는 '집시의노래'님이 풀어가는 얘기들
19로 바둑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보세요.

19로의 유목민(18화) -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그녀는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습니다.

바둑귀신들만 모여 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희희낙락하는 옥탑방에 곧잘 올라왔습니다.

 

다른 간호사들은 그 공간에 올라오기 싫어했지요.

그러나 그녀는 가끔 원장님 심부름이라며 과일이나 빵 같은 간식을 들고 올라 왔습니다.

 

"어휴, 너구리 소굴!"

 

그녀는 방에 들어서면 꼭 문을 두어 번 흔들어 환기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멤버들이 고개를 들어 문쪽을 보았습니다.

 

류혜경 그녀, 무수한 사내들의 눈초리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합니다.

멤버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다소 터프하긴 하지만 그래도 권 박사 병원에서 누구보다 멤버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멤버들도 하나같이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과감하게 대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권 박사의 식객으로 놀고 먹는 처지라 섵부른 사랑의 충동에 베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오늘 계단 물청소 당번은 임수명씨!"

 

그녀가 과일을 한 바구니 내려놓고 나가면서 수명을 지목했습니다.

바둑을 안 두고 있는데다 만만한 막내니까 가리켰을 겁니다.

 

수명은 두말없이 그녀를 따라 옥탑방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양동이에 물을 퍼담아 나르면서 계단 청소를 했습니다.

 

원래 권 박사님의 특별지시에 의해 바둑도장의 멤버들은 병원에서 다른일은 하지 않도록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식사도 식모가 따로 있어 편안히 먹을 수 있었지요.

 

다만 옥탑방과 그에 속하는 계단 정도는 멤버들이 알아서 적당히 쓸고 닦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놈의 물청소는 옥탑방 쪽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물을 부으면 구정물이 1층까지 흘러내리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수명은 병원의 모든 계단을 혼자 물청소해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그녀가 아주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보았지요.

멤버 중에 그랬던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은 누나가 사줄게요. 두루치기 잘하는 집이 있으니까."

 

그녀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수명은 저녁을 거르고 밖으로 뛰쳐나왔지요.

병원에서 같이 나오면 오해를 받을까봐 수명이 먼저 나간 뒤 그녀가 나와 병원에서 서너 블럭 떨어진 사거리에서 만났지요.

 

그래도 누군가의 눈길이 두려워 재빨리 뒷골목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멀리 벗어났습니다.

 

"익었으니까 먹어봐요. 고성에서 가장 맛있게 하는 고깃집이니까."

 

혜경이 젓가락으로 빨갛게 양념이 범벅된 고기살점을 집어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돼지목살을 썽둥썽둥 썰고 고추장 양념과 양파, 마늘 등으로 무친 메뉴였지요.

연탄 화덕에 석쇠로 구워낸 그 두루치기 맛은 환상이었습니다.

 

비계가 다소 많은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부드럽고 달콤했지요.

정신없이 4인분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수명이 맛있게 먹어주니 그녀도 흐뭇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오늘이 월급 날인데 우리 막동이 수명 씨 선물 하나 해줘야겠다. 맛있게 먹었으니까."

 

마다할 이유도 없지요.

그녀가 수명을 데리고 로타리 부근의 서점으로 끌고 갔습니다.

책 하나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 했지요.

 

수명은 신중하게 서가를 둘러봤습니다.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심종식 기사가 편역한 [바둑정석사전]이었습니다.

화점과 3.3. 소목과 고목 외목의 변화를 샅샅이 연구해 사전처럼 만든 책이었지요.

 

권 박사 도장에도 없는 사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명은 끝내 그 책을 서가에서 뽑지 못 했습니다.

혜경이 바둑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자 경험이 없지만 첫사랑 음악선생님과 오성록 선배의 관계를 지켜봐서 미묘한 여자의 심리를 알 것 같았습니다.

여자들은 비현실적인 바둑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바둑에 목을 맨다면 바둑을 더욱 질투하겠지요.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혜경의 선물을 택하는 자리에서 바둑 책은 온당치 않은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비틀어 황석영의 [가객]을 골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눈에 기쁨이 감돌았습니다.

 

"데이트 괜찮지?"

 

서점에서 나오자마자 그녀가 팔장을 끼었습니다.

봉긋한 그녀의 가슴이 오른 쪽 팔꿈치에 느껴졌습니다.

머릿속에 온통 화염이 이글거렸지요.

 

마치 기브스를 한 사람처럼 오른팔을 뻣뻣하게 허공에 띄운 채 수명은 걸어야 했습니다.

아마 삼십 분 쯤 걸었을 겁니다.

고성 읍내에서 한참 벗어난 시골의 신작로를 걸었지요.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루치기를 먹을 때 이미 그녀의 집으로 가는 마이크로 승합버스 막차는 끊겼다고 했습니다.

대개 막차를 놓치는 법은 없고 놓칠 경우에는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병원 숙소에서 밤을 보내고 그도 아니면 친구 집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바람 부는 신작로의 밤은 이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토록 어둡고 거친 길을 함께 걷는다면 그 어떤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얽혀진 팔에 힘과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깡촌이죠? 전기 들어온 지가 몇 년 안된 곳이예요. 저기 불빛이 보이는 곳이 집이에요."

 

그녀가 살짝 존댓말을 했습니다.

고기먹을 때부터 동생다루듯 반말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둠 속에서 갑자기 존대를 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심리의 변화일까요?

그녀가 자신을 남자로 존중한다는 느낌까지 미치자 순간적으로 수명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훔칠 뻔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만 그랬지 몸은 밀랍처럼 굳어 꼼짝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려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녀와 걸어온 삼십 분의 길은 비록 어둠 속이라 해도 꽃피고 새 우는 비단길이었지만 다시 그 길을 혼자 돌아가려니 아찔했습니다.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딸을 밤길에 데려다 준 흑기사님이라면 우리 부모님들도 따뜻한 밥 먹여 재워주실 걸요."

 

그녀가 팔을 끌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식객으로 떠돌아 다니고 있지만 잠자리는 정해진 곳에서 하고 싶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런 철학을 가져 본 적 없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냥 그녀 앞에서 폼을 잡아본 거지요.

그러자 그녀가 물끄러미 올려보다가 대답했습니다.

 

'잠깐 기다려요. 집에 들어갔다 나올게요. 월급은 부모님께 전해드려야 하니까."

 

말대로 그녀는 금방 돌아 나왔습니다.

 

"이젠 내가 바래다 줄 차례네 뭐."

 

싫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희망했습니다.

이 번에는 좀더 확실하게 팔짱을 끼었습니다.

수명은 은근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아보기도 했습니다.

성숙한 처녀의 잘룩한 허리.

그 감촉은 대박이었습니다.

 

거기까지가 첫 키스를 나누기 전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읍내로 돌아가는 길에 둘은 원 없이 키스를 교환했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식사를 같이 하고 책을 사고 신작로를 같이 걸었을 뿐인데 영혼의 창구라는 입술을 서로 서슴없이 열고 정을 나누었으니 말입니다.

 

입술이 부르트고 혀뿌리가 얼얼하게 헐 정도로 둘은 탐닉했습니다.

그리고 고성 읍내의 여인숙에서 쑥스러운 첫날밤을 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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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쉬었습니다.

다시 천천히 기를 모아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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